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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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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 2026년05월24일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 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오늘 본문으로 "바울처럼 100% 성령의 인도"라는 제목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 2절에 보니까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그랬습니다. 중요하니까 금식하잖아요. 중요하지 않은데 뭐 하러 밥을 굶으면서 기도합니까?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십니다. 안디옥 교회에 중요한 사람이 많지만 바나바가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거기에 사울이 있다는 사실을 주님이 아십니다. 아시고 그냥 두지 말고 그들을 따로 세워서 선교사로 파송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모든 제자들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안수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보낸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바나바 팀 일행과 사울 팀 일행의 역사입니다. 전도의 역사요, 선교의 역사입니다. 그 역사의 주인은 바로 성령님이시며, 성령께서 세우시고 파송하시고 지시하시면서 세계 복음화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날 때 기도하는 습관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교회가 크게 성장한 것도 새벽 기도에 모여서 기도하고 하루를 기도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가 그런 역할을 잘 못하잖아요.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사회에 다 빼앗겼습니다. 복지, 결혼식, 장례식 같은 중요한 일들을 세상이 다 빼앗아 갔습니다. 교회에서 이 일을 제대로 안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보다 다른 종교가 더 잘하다 보니까 다른 종교가 복지적인 면에서 더 신뢰를 얻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깨어나야 하며, 여기에 대해서 정말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새벽 기도 불이 꺼지고 잘 안 모입니다. 금요 기도회도 모이지 않고, 수요 기도회도 안 모이고, 그러다가 결국 주일 오후 예배도 적당히 때우다 보니 교회들이 결국 문을 닫는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예배는 무조건 다 살려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중요한 플랫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불신앙이 한번 들어오면 영적으로 뇌가 불신앙적으로 가버리고 내가 죽어버립니다. 오늘 우리는 일단 나의 뇌를 살려야 하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크게 숨을 한번 내쉬고 편안하게 호흡하면서 기도로 시작하고 하루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 중심을 하나님이 아십니다. 우리의 모든 삶, 특히 전도와 선교는 바울처럼 100%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6절에 보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바울 일행은 아시아 사람이다 보니 당연히 아시아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했겠지요. 그러나 아시아 쪽으로 가려고 하니까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런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는데 마게도냐 사람이 손짓을 하는 것입니다. 이때 바울은 '아,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시는구나' 하고 깨달아, 즉시 순종하고 발걸음을 바꾸어 버립니다. 선교의 흐름을 성령께서 주장하십니다. 그 결과 이 흐름을 통해 아시아보다는 먼저 유럽이 복음화되었고, 유럽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 어떤 사건들을 통해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이 복음화되었으며, 결국 이천 년이 지난 후 우리 대한민국을 통해 세계 복음화를 이루시려고 복음이 여기까지 들어온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교회가 세워졌고, 대한민국이 축복을 받은 것은 무조건 복음 전파와 선교를 위해서입니다. 지금 한국에 다민족이 많이 와 있는데, 눈만 열리면 우리가 그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다만 혼자 힘으로는 안 되기에, 교회가 그들을 살릴 플랫폼으로 만들어져 가야 합니다. 이를 두고 기도하면 반드시 됩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고린도 교회를 거쳐 에베소에 갔을 때 어떤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복음 전하는 제자들이었지요. 바울이 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하고 물으니, 그들은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답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복음, 즉 아볼로를 통해 전해진 단편적인 복음만 받았던 것입니다. 이에 바울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복음을 듣고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그들이 믿는 것을 보고 바울이 안수하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성령 받은 증거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내 생각으로 다 계산하지 말고, 성령을 달라고 하나님 능력을 의지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성령 받으면 치유되고 변화됩니다. 흑암이 꺾이고 사람이 바뀌며 귀신이 떠나갑니다.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해야 할 일이 딱 몇 가지로 분명하다는 뜻입니다. 교회에는 자꾸 성령이 임하셔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무조건 귀신은 떠나야 합니다. 귀신이 안 떠나고 붙어 있거나 장난을 친다면 그것은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시스템과 영적 상태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귀신이 무조건 떠나는 것이 기준입니다. 이것은 말로 안 되고, 가르침이나 교육이나 프로그램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내가 영적 플랫폼으로 딱 서 버리면, 내 안에 계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흑암 세력이 꺾여버리기 때문에 내가 기도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갈릴리 바다를 지나실 때 풍랑이 일어났고 예수님이 그것을 명령하여 잔잔케 하셨으며, 그 바다를 지나 거라사의 귀신 들린 청년을 만나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그냥 하신 것 같지만, 그전에 예수님은 산에서 밤을 새우며 기도하셨습니다. 무슨 기도를 하셨겠습니까? 육신을 입은 인간은 예수님이라 할지라도 육을 통해 사단이 역사할 수 있습니다. 사단은 항상 육신을 통해 장난치고 방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으면 내 육신의 수준을 못 벗어납니다. 그 육신의 수준을 뛰어넘는 것은 우리의 힘이나 능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기도하는 그 시간만큼 영적으로 뛰어넘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가 중요하니까 많은 시간을 들여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한 이후의 영광은 하나님이 말할 수 없이 크게 받으십니다. 그런데 내가 기도에 투자를 안 했다면, 중요한 순간에 오는 하나님의 영광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항상 내 수준으로 행동하는 것은 정말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이고 진짜 불신앙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흑암을 무너뜨리고, 영적인 병에 걸린 사람들을 분명히 치유해야 합니다. 그 놀라운 역사가 교회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영적 흐름을 바꾸기 위해 내 한 사람이 기도의 무릎을 탁 꿇어야 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바로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내 힘으로 안 되기 때문에 내가 죽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온전히 나타나서 부활의 능력과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은혜는 어느 순간 임하지만, 우리의 체질은 금방 안 바뀝니다. 체질이 바로 되어야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지속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이 뒷받침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의 체질이 성령님의 고귀한 도구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사단이 부리는 악의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져야 할 기본 청결한 영적 양식이 무엇입니까? 성령을 거스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성령을 모독하고 거역하는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짓는 가장 큰 죄는 도덕적인 죄보다 성령을 거역하는 죄입니다. 이것이 진짜 큰 죄입니다. 인간의 수준으로는 자기 자신의 영적 깊이를 다 못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때 성령의 빛이 임하면, 내가 얼마나 강퍅하고 악한 존재였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진실한 고백이 나옵니다. 이 과정을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갈보리를 영적으로 체험한 것입니다. 이 속으로 딱 들어가야 그때부터 진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진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들도 요즘 종교 활동은 많이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복음인 척, 은혜받은 척하는 가짜라면 어떡합니까? 겉만 무성한 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참 그런 율법과 신앙의 올무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체질을 아시고 이런 연정의 여정을 허락하셨음을 믿음으로 딱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조금만 지나면 진짜 영적인 답이 보이고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됩니다. 오직 복음, 오직 그리스도,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천명 메시지 아닙니까? 우리가 세팅해야 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영적 서밋 타임', '서밋의 응답', '서밋의 그릇'입니다. 타임과 응답과 그릇, 이것이 딱 3대 세팅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이제 매일같이 이것을 체크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려고 마음을 먹는 그 순간이 벌써 영적 서밋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기도의 분량이 있습니다. 내가 영적 서밋이라면 기도의 시간에 투자를 해야 합니다. 하루 시간을 계산해 보고 '오늘 하나님 앞에 이 정도 시간은 드려야겠다' 결단하여 시간을 쪼개어 정시기도를 하면서 깊이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하루 중에서 가장 마음이 고요하고 정상적이며 편안할 때가 바로 기도하는 시간일 것입니다. 기도할 때만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기도한다는 그 자체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것이 서밋이며, 우리의 기능과 전문성도 반드시 이 기도의 흐름 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일을 할 때 내 실력이나 인간의 계산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흐름 속에서 내 기능이 나올 때 그것이 바로 위에서 주시는 달란트가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그것을 딱 붙잡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영적 서밋이 되고 나면 하나님이 위에서 주시는 보좌의 축복이 참 많습니다. 그런 것들을 가지고 기능 서밋의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영적 서밋이 되고 기능 서밋이 되면, 이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그 현장의 문화가 바뀌고 문화 서밋의 응답이 나옵니다. 우리가 서밋 타임을 가지면 하나님은 반드시 위로부터 서밋의 응답을 주시는데, 우리가 누려야 할 응답은 바로 오직의 응답, 유일성의 응답, 재창조의 응답입니다. 오직의 응답이 무엇입니까? 내 깊은 마음속에 아, 오직 복음, 오직 그리스도 외에는 없구나 결론 내리는 것입니다. 말로는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내 깊은 중심의 가치관은 다른 것에 가 있다면 인생이 복잡해집니다. 그것은 오직 복음이 아닙니다. 이 오직이 나에게 참된 응답이 되면,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유일성의 응답이 따라오게 됩니다. 위로부터 내리는 유일성의 응답을 누릴 때 현장이 재창조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