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 그런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계속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예수님은 여리고를 출발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습니다. 어 거리는 한 27km 정도 되는데 쉬지 말고 걸어가면 약 9시간 정도 걸어야 되는 그런 그림입니다. 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출발해서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예루살렘에서 성경에 다 예언되어진 말씀 잡혀서 고난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그런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 거지요. 근데 예루살렘은 높은 지역이에요. 좀 해발 한 1천m 됩니다. 그런데 여리고는 또 마이너스 해발이라서 낮은 곳이거든요. 이 낮은 여리고에서 지금 점점 고도를 올리면서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다고 하는 이 여정이 상당히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 그 한 주간 동안에 모든 일이 진행되는 거예요. 예수 예수님의 예루살렘의 입성, 성전 정화, 최후의 만찬, 게세마네 동산에서 체포, 십자가 처형 이것이 이제 앞으로 한 5일 후가 되면 어 이렇게 이루어지는데 한 5일 앞두고 여리고 이제는에 27km라는 그 거리를 이렇게 걸어가시면서 하는데 바로 여리고가 여기에서 놀라운에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 놀라운 사건이 뭐냐니까 한 사람이 있는데 여리고에 한 사람이 준비되어 있는데 이 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면 아 지금은 나중에 말을 하고 예수님을 진정으로 보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이에요.
예수님을 진정으로 보고 싶어 하는 그 한 사람 예수님이 그 한 사람을 만나주셨다는 거예요. 이게 중요한 겁니다. 예수님은 그 한 생명의 영적인 상태,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추구하는지, 왜 그런지를 하나하나 다 알고 계셔요. 그런데 그 많은 여리고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주목하셨어요. 그 한 사람의 마음을 아시거든요. 예수님을 진정으로 보고 싶어 하는 그 한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데 그 한 사람이 성경은 삭개오라 그럽니다. 이 삭개오는 도대체에 예수님에 대해 소문을 들었는데 그분이 어떠한 분이시기에 저렇게 많은 군중들이 따라다니고 저분은 어떠한 분이기에 소문에 죽은 자도 살린다 그러고 그리고 그분 따라다니는데 병자들이 낫고 고침을 받고 귀신 들린 자가 치유받는다 그러는데 도대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많이 궁금했던 겁니다.
그런데 그 직업을 보면요. 삭개오는 세리장이고 또한 부자라 그랬거든요. 여러분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가 더 힘들다 그랬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가능하다 그랬거든요. 이 부자는 세리도 아니고 세리장입니다. 많은 세리 세리들을 거느리는 요즘 세금 세금 뭐 요즘 어 너 말하면 뭐 세무서장인가 뭔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간부급이잖아요. 그런데 부자가 돈 많은 사람은 갈급하지 않을 텐데 이 사람은요 그 근본 마음속에는 정말로 하나님을 향한 마음, 주위에서는 죄인이라고 로마 사람들은 자기를 무시하고 자기 동족 유대인들은 동족을 팔았다고 나쁜 놈이라고 늘 욕을 하는 이상한 직업을 갖고 있지만 그 깊은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 갈급한 마음이 있는 거예요. 그 마음을 주님은 아십니다.
어떤 사람은요 영혼을 팔아가면서 돈을 취하면서 그렇게 사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있는데 그런데 이 사람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자기 하나는 지킨 거야. 하나님을 만나야 되겠다고. 주님을 향한 깊은 영혼의 갈급함이 있는 거예요. 그 하나님을 향한 그 갈급한 마음을 주님이 아시고 그 많은 여리고 길 가운데 한 길을 가는데 이미 다 삭개오가 올 수 있는 그 거리를 향해서 지금 가는 겁니다.
예수님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 가지고 그분이 어떤 분인지 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 성경에 보니까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그리고 또 보기 위하여 어디로 갔느냐? 키는 작아요. 키가 작았다 보니까 예수님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돌무화과나무 위에 다른 성경에는 뽕나무라 그랬어요. 하여튼 나무 위에 올라갔어요. 그런데 뽕나무에 올라가 있는 그 거리를 예수님이 지나가는 겁니다.
예수님은 바로 알아보고요. 삭개오야 삭개오를 바로 쳐다보시고 삭개오야 내려오라. 오늘 내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이 소식이 삭개오에게는 얼마나 반갑고 좋았던지 예수님의 그 일기를 보면요. 초청받아 갔어요. 다 대부분 바리새인도 초청했고 저들도 초청해서 갔거든요. 그런데 내가 직접 예수님이 네 집에 가겠다고 말하는 구절은 여기밖에 없어요. 삭개오가 이 놀라운 응답을 받은 거예요. 삭개오가 얼마나 좋던지요. 막 체면도 없어. 그거는 바로 쫙 내려왔어요. 내려와 가지고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는 그 말씀이 얼마나 막 완전히 환영하고 영접한 거예요.
삭개오의 반응이 얼마나 빠릅니까?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한 겁니다. 그런데 옆에서는 수근거립니다. 죄인의 집에 간다고. 예수님은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만 죄인으로 취급하지만 예수님은 그걸 보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이 중요하다니까요. 내가 지금 어떤 짓을 했느냐, 어떤 과거를 가졌느냐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있느냐 말이야. 그게 살아 있으면 구원받을 사람이에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요. 환경 상황 때문에 내 영혼을 죽여 버리고 그냥 질식시켜 버리잖아요. 심지어 팔아먹고 육의 것 얻기 위해서 어리석은 사람이지요.
근데 삭개오는 그렇지 않다니까요. 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다 보니까 주위에는 진정 상담해 주는 사람 없고 비판만 하니까 마음 열고 대화할 사람이 없잖아요. 가족간에도 대화 못 해요. 너무 마음 그 마음을 주님은 아시고 가까이 가셨습니다. 삭개오를 직접 불렀어요. 그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삭개오는 얼마나 기쁘고 좋든지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깊은 마음속에 영접하고 환영했단 말이에요. 그는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에 평생의 답을 얻었습니다. 그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시고 주님 앞에 무릎 꿇고 회개하며 엄청난 고백을 했습니다. 평생에 한 번 있는 엄청난 고백을 했는데 그게 뭐냐?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이것은요 하나님을 모신 청결한 양심으로 그동안에 죄인이라는 그 표현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하겠다는 거예요. 얼마나 예수님이 기뻤는지 한 죄인이 이렇게 회개하고 아마 눈물 흘렸겠죠. 회개하며 진정으로 인생을 고백하며 주님 앞에 다 회개하는 그 참회의 마음, 그 중심을 하나님이 받으시고요. 예수님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한 5일만 있으면 십자가에 달려 살 찢기고 피를 흘려 인생의 모든 하나님의 계획 이루어야 되는데 사실은 뭐 그런 과정 속에 왜 이런 장면이 나올까요? 오늘 우리가 걸어가는 발걸음, 이 복음의 발걸음 안에는 처음 스타트가 주님을 모시는 이런 중심이 회복돼야 돼요. 주님을 향한 마음.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기본이 아닐까요? 주 예수님 하면 최고의 우리의 중요한 고백이고 그 주 예수 이름 부르는 순간에 언제든지 시간 관계없이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그 마음의 상태 얼마나 귀한 마음입니까?
세상의 모든 것을 빼앗겨 버려 가지고 주님 앞에 고백할 수 없는 정도 신앙고백이 제대로 안 나오는 상태면 이거는 허망한 마음이잖아요. 완전히 실패. 그 자체가 실패입니다. 그러나 환경이 좀 어렵고 모든 것이 좀 안 되는 거 같아도 그러나 내 영혼만큼은 주님을 향한 마음이 살아 있다. 복음을 향한 마음이 살아 있다. 나는 은혜받고 힘을 얻어야 돼. 주님 나를 도와달라고 불쌍히 여겨 달라고 그런 고백을 한다면 살아 있는 마음이에요. 희망 있는 마음이고 소망 있는 마음이고 하나님이 역사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어떻게 축복하셨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자, 다른 길을 통해서 예루살렘 갈 수도 있거든요. 이 갈릴리 바다는 뺑 돌기 때문에 어떤 길을 통해서라도 예루살렘에 갈 수 있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여리고를 통과하는 것은 바로 이 삭개오를 만나 이 구원의 놀라운 축복 주시기 위해서 간 발걸음이 아닌가?
오늘 우리가 이 삭개오의 그 주님을 향한 열린 마음이, 이 마음이 회복돼야 됩니다. 기도할 때 이 마음이 회복돼요. 기도가 그렇게 중요한 겁니다. 하루에 몇 분 기도한다. 그거 귀한 거예요. 여러 가지 부족해도요 이 마음 하나 살아 있으면 하나님 계속 은혜를 베푸셔요. 모자라도 부족해도 그래도 기도한다는 그 마음이 살아 있으면 하나님 은혜를 베푸십니다. 오늘 이 중심이 회복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 이렇게 주님 모셨다면 제자 아닙니까? 주님을 모셨다면 하나님의 자녀고 사명자잖아요. 하나님 바로 사명 주시거든요. 사명을 받은 사람은 미션을 시행하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구원받은 자가 주님의 사명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게 바로 열 문화의 비유입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열 명에게 한 문화씩 준 거예요. 다 줬습니다. 다 받았어요. 그런데 이 주인이 왕위를 받아올 때까지 그 기한이 얼마인지를 몰라요. 왕위를 받아올 때까지 이 한 문화로 최선을 다해서 장사해라. 이게 이제 주신 미션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분명한 달란트와 기본을 주셨거든요. 그걸로 장사해서 이윤을 남겨라.
그러면 어떤 사람은 열 문화를 남기고요. 열심히 해서 어떤 사람은 다섯 문화를 남겼는데 한 문화를 가진 사람은 생각이 다른 거예요. 여러 가지 불신앙으로. 그래 가지고 아무것도 안 한 거야. 종말의 때까지 신실하게 사명을 감당해야 되는 그 교훈을 주는 것이 바로 열 문화의 비유입니다.
아, 예수님께서 이 삭개오의 집에서 이 말씀을 하셨는지 아니면 오는 중에 하셨는지는 몰라요. 그러나 분명히 예루살렘으로 가는 과정 속에 삭개오의 회심과 축복을 하신 이후에 이렇게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문맥을 보면 저는 그렇게 해석을 합니다. 삭개오 같은 우리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를 의미하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우리가 받은 이 사명을 생명 끝나는 날까지 이거를 감당해야 되는데 이게 이제 미션을 받은 사람인데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가? 세 부류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크게 받아 가지고 열 문화를 남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또 어떤 분은 또 다섯 문화를 남기는 사람이 있는데 또 한 부류가 뭐냐니까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없는 이유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못 하겠다는 거예요. 할 수 없다는 거야. 또 불평하면서 또 비교하면서 여러 가지 상황에 나는 못 하겠다는 거예요. 할 수 없다는 거죠. 그게 한 문화 받은 사람입니다.
한 문화 받은 자에게 어느 날 주인이 왔습니다. 다 이렇게 결산을 하지요. 이 세 부류가 나왔는데 한 문화로 열 문화를 남긴 종이나 다섯 문화를 남긴 종에게 똑같은 말씀 하셨어요. 잘하였다 착한 종아. 칭찬받았습니다. 너무 잘했다 착한 종아. 다섯 문화 남긴 자에게도 너무 잘했다 착한 종아.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너는 열 고을을 차지하고 너는 다섯 고을을 차지해라. 축복이잖아요. 이거는 영원한 상급이에요. 이 땅 위에서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요 하늘나라의 상급이 이 땅에서의 상급보다 더 어마어마한 상급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
아, 우리가 믿음으로 이것을 진짜 바라보고 바울 사도는 이것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에 이 땅에서 고난받는 거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하늘나라 상급을 바라본 사람이기 때문에 그게 세상 사람과 다르잖아요. 한 문화를 갖고 일하지 않고 보관만 하고 가져온 종에게 이 사람은 감사도 없고 믿음이 없잖아요. 늘 두려워하고 돈을 수건에 싸두어서 딱 이렇게 보관해 놨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악한 종아 책망했어요. 악한 종이래. 그거는 사람이 보는 악함하고요 주님이 보는 악함은 다릅니다. 이 악한 종아 부르시고 그의 한 문화를 빼앗아 가지고 열 문화 있는 자에게 줘버렸어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주인이여, 그 사람이 열 문화나 있는데 그러니까 주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 한 문화를 빼앗아 열 문화 있는 자에게 주라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예수님은 이렇게 심판하신 거예요.
아,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참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참 믿음이 뭐냐? 믿음은요 최선을 다하는 게 믿음이에요. 내가 있는 것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게 믿음이에요. 그러면 이거 반대로 말하면 그거는 믿음이 아니잖아요. 믿음이 없으니까 안 하는 거죠. 믿음이 있는 사람은 특징이 최선을 다하게 되어 있어요.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고 뒤를 안 돌아보고 계속합니다. 그게 바로 미션 받은 사람이고 믿음 있는 사람이에요. 한 주간 동안에 지금부터 여러분들 참 이런 부분을 가만히 돌아보고 내가 받은 거 있는데 이것으로 내가 어떻게 장사했고 어떻게 최선을 다했고 얼마나 성실했느냐 한번 확인을 해 봐야 돼요. 핑계거리 많잖아요. 못 할 핑계거리 많잖아요. 평생 그러다가 실패합니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게 없죠.
아, 성경의 모든 본론이 뭐냐니까 예루살렘에서 전부 다 일어나잖아요. 그 일어나는 사건이 뭐냐? 십자가와 부활 사건입니다. 그 사건에 이제 들어서면서 예수님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거예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면서 그냥 가시는 것이 아니라 나귀를 타고 가셨다. 제자들에게 누가 물으면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게 바로 어 구약 성경 스가랴서 9장 9절의 그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시는 말씀이거든요. 백성들이 호산나 외치면서 공개적으로 메시아 선포의 사건이잖아요. 왕이 가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어 왕을 환영했잖아요. 백성들은 예수님을 오해했습니다. 로마에서 해방시킬 왕으로 알고 판정했는데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잖아요. 인류의 모든 죄짐을지고 영적인 만왕의 왕으로 참제사장으로 참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셔서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어마어마한 메시아로 오시는데 이 메시아로 오시는 예수님을 사람들은 잘 모르고 오해를 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은 왕이잖아요. 선지자로 오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오셨기 때문에 당연히 백성들이 환영해야 돼요. 그렇죠?
이게 바로 우리가 예배드리는 어떤 분위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왕 앞에 당연히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을 기쁨으로 찬양하고 말이죠.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신 주님을 찬양하고 성령으로 오신 주님을 찬양하고 오늘 또 우리 자리에 오신 주님을 환영하고 찬송하고 이런 분위기가 확 돼야 돼요. 바리새인들이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해달라 너무 떠드니까 예수님 뭐라는지 아세요?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예수님의 책망이잖아요.
오늘 우리가 참 아 이런 책망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돌들이 소리 지를 만큼 우리가 찬송이 끊어지면 안 되잖아요. 찬송을 힘있게 불러야 돼요. 이제부터 나보다 더 힘있게 불러야 돼요. 내가 볼 때 예배드릴 때 나 혼자 찬송하는 것 같아요. 입을 쫙쫙 벌리고 크게 부르세요. 힘있게 불러야 돼. 그래 가지고 우리는 이 100명을 생각해야 돼요. 500명 1천 명을 생각하고 100명을 생각하면 한 사람이 열 명분을 불러야 되잖아요. 정말 그 사명감을 가지고 해야 돼요. 왜냐? 흑암이 확 무너질 정도로. 그렇게 찬송을 하고 힘있게 해야 흑암이 꺾이고 우리 믿음이 힘을 얻고 말이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수요일마다 계속해 보세요. 흑암이 꺾이면서 역사 일어납니다. 예.
하나님이 개입하셔야 되잖아요. 교회 부흥이라는 것은 교회 성장과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개입하셔야 되는데 개입하시기 전에는 반드시 이런 호산나 찬양이 있어요. 예. 큰 교회가 왜 큰 교회인 줄 아세요? 찬양대를 통해서 막 전체 분위기를 사로잡잖아요. 찬양대가 그리 중요한 거라 이게. 어. 그런데 어떤 교회는요 찬양대가 소수더라고요. 그런데 찬양대가 전 교인이 찬양하는 것 같아. 그리고 분위기는요 굉장히 뜨겁습니다. 예. 설교도 목사님이 한 시간 이상이에요. 보통 내가 볼 때 한 시간 이상. 그만큼 열정이 크고 뜨겁다는 거예요. 그 뜨거움과 열정에 교인들은 막 움직이는 역사가 있어야 돼요. 우리 교회는 설교를 길게 안 하는 대신에 그 짧은 설교에 온 정성을 쏟고 은혜받고 힘을 얻고 그래 가지고요 눈을 탁 믿음의 눈을 뜨고 예. 믿음의 눈을 뜨고 다 이래 가지고 한 주간 동안에 영향을 미쳐야 됩니다. 이게 예. 그렇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왜 예수님 예수님 우시면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비참한 참상을 말씀하셨을까? 예루살렘을 보면서 예수님은 우셨다니까요. 이게 이제 결론인데 예루살렘에 평화를 주는 길을 예수님이 여셨는데 평화를 주는 그 길,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 자신을 알지 못하고 오해를 한 거예요. 로마에서 해방시켜 줄 그런 왕으로 생각했고 이 예수님을 영접해야 되는데 영접하지 않고 계속 따라다니면서 죽이려고 하는 이 분위기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그런데 이 영적인 흑암이 얼마나 강하냐 하면요 이 불신앙의 흑암이 너무 강하다 보니까 후대에서 완전히 절망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을 것을 생각하니까 예수님의 눈에서 눈물이 나는 거예요. 후대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죽어가고 나라 빼앗기고 비참한 결과를 아시는 예수님은 우는 거예요. 여러분들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되거든요. 반드시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이 원인을 알고 여기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게 지도자고 진정한 사람이잖아요. 앞으로 우리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우리 후대와 우리나라 후대가 어떻게 될 거냐. 그래서 이 국가를 위해 기도해야 되는 게 어 돈 관리한다고 온 생을 다 하지 한 영혼을 위해서 눈물 흘리는 기도하는 사람 얼마나 있습니까? 그래서 이런 부분은 참 말로 안 되기 때문에 이거는 뒤엎어야 되거든요. 회개해야 되거든요.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되거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서 우시면서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숨겨졌어요. 인간의 마음대로 안 됩니다 이거요. 그 유대인들 지도자들 모든 사람들 그렇게 되고 싶어 되겠습니까? 이 흐름에서 못 빠져나와요. 못 깨달아요. 예수님이라도 그들을 못 깨우친다니까요. 왜냐하면 흑암에 덮여버리면 안 돼요. 대한민국이 한번 흑암에 덮여버리면 못 빠져나와요. 그러면 결국 전쟁 터지고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거야. 우리나라 어떤 미국의 학자가요 희망적인 걸 해 놨더라고요. 진짜 맞아요. 이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큰 나라 될 거라는 어마어마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이게 엄청난 중요한 과제인데 이게 그냥 되는 게 아니거든요. 이번 고비를 잘못 넘기면 정말로 우리가 큰 후회할 일이기 때문에 지금은 진짜 기도해야 될 때고 지금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께서 성전을 일단 정화하셨잖아요. 더럽히는 장사꾼들을 싹 쫓아내고 성전을 깨끗하게 정돈하신 예수님. 교회가 살면요 나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큰 교회에 우리 말을 못 해도 우리 교회만큼이라도 우리의 본분을 다하고 진짜 기도하면 이 영향력이 크거든요. 여러분 하나가 이 성전, 여러분의 성전, 주님이 거하시는 그 성전을 정결하게 하고 회개하고 갱신하고 복음에 생명 걸고 진짜 말만 듣던 복음, 우리 얼마나 복음 많이 들었습니까? 말만 듣던 복음 이제는 우리가 생을 걸어야 되겠구나 결단해야 되겠구나 절대적으로 우리는 이것을 위해 생을 걸어야 되겠구나라고 결단하면 이 영향력이요 주위에 미치는 게 큽니다. 이게 이제 우리 국가를 살리는 거예요 이게. 예. 승리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 (눅 19:28-40)
20250914 주일오전예배
서밋선교교회 / 설교 박한식목사